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야마 유타 (문단 편집) === 2002~2015년 === 2002년에 입단했다.[* 원생 리그에서 46연승을 포함, 71승 8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입단했다.] 2005년 아함동산배에서 우승하며 일본 바둑 사상 최연소 우승(16세 4개월)을 달성했고, 2009년 명인전에서 [[장쉬]] 명인을 종합 전적 4-1로 꺾고 명인 타이틀을 획득하며 최연소 7대 기전 타이틀 획득(20세 4개월) 기록과, 최단 기간 九단 승단(8년 10개월)[* 일본기원 승단 규정에 따르면 소속 기사가 7대 기전 중에서도 3대 메이저 타이틀(기성(棋聖)전, 명인전, 혼인보전)을 획득할 경우 九단으로 승단하게 된다.] 기록을 세웠다. 2013년 3월 14일에 장쉬 기성을 종합 전적 4-2로 꺾고 기성(棋聖) 타이틀을 획득하며 일본 바둑계 최초로 7대 기전 '''6관왕'''에 등극했다. 동시에 사상 3번째로 그랜드슬램[* 7대 기전을 전부 1번 이상 우승하는 것을 일본에서는 그랜드슬램이라고 부르는데 [[조치훈]]이 1987년에 최초로 달성했고, 2010년에는 [[장쉬]]가 2번째로 달성했다.]도 달성했다. 동년 10월 17일에는 야마시타 게이고 명인을 종합 전적 4-1로 꺾고 명인 타이틀을 획득, 사상 2번째로 대삼관(大三冠)[* 기성(棋聖), 명인, 혼인보 타이틀을 동시에 보유하는 것으로 [[조치훈]] 九단이 1983년에 최초로 달성했다.]을 달성했다. 하지만 십단전에서 계속 가로막혀 7관왕 달성이 미뤄지다가,[* 2013년 4월 도전기에서 [[유키 사토시]], 2014년 1월 도전자 결정전에서 다카오 신지, 11월 8강전에서 [[고바야시 사토루]]에게 패했다.] 2014년 12월 왕좌전, 천원전 도전기에서 패하며 4관왕까지 물러났다. 2015년에는 다시 십단전을 제외한 6관왕에 복귀했고 십단전 도전기에서도 [[위정치]] 七단(당시)을 꺾고 도전권을 획득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